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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변방... 삼정산 7암자 순례길은 고행길이었다.

워킹·트래킹

by 野草 2012. 4.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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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정산 정상에서...


산행일자 : 2011년06월19일

산행코스 : 음정마을-작전도로-도솔암-영원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입석마을 

    

09:11 - 음정마을 (출발)

09:33 - 작전도로 차량차단기

09:55 - 도솔암 갈림목

10:55 - 도솔암

11:39 - 도솔암입구, 영원사 진입로

11:56 - 영원사 (점심식사)

12:43 - 영원사 출발

13:45 - 삼정산 갈림목

13:53 - 헬기장

13:58 - 삼정산

14:05 - 헬기장

14:10 - 삼정산 갈림목

14:12 - 상무주암

14:38 - 문수암

15:07 - 삼불사

16:14 - 약수암

16:51 - 실상사

17:02 - 입석마을 (도착) 

    

   


삼정산 (三丁山 1,182m) - 경남 함양군 마천면 , 전북 남원시

지리산 주능선을 관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를 자랑하는 남부능선의 삼신봉이 있다면 중북부능선의 삼정산이 또한 그에 비견하는 전망대이다.  삼정산은 지리산 품안에 놓인 봉우리이면서도‘봉(峰)’이 아닌‘산(山)’으로 記名하고 있다.
  
지리산 칠암자 산행길

지리산 산봉 85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삼정산(1261m)...
함양군 마천면과  남원시 산내면에 걸쳐진 그 산의 가파른 능선 아래 어깨쯤에 가느다란 숲길을 따라 일곱 군데의 암자와 절집을 순례가는 길이다 .  그 길에서는 영험이 스린 벼랑에 매달린 다섯 암자와 소박한 두 절집이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을 거쳐 남원의 실상사이다.

     

☞ 순례코스 : 음정마을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 음정마을에서 출발에 앞서 몸풀기 체조...

  

▲ 작전도로 차량차단기가 있는 곳에서...

  

▲ 차단기가 있는 곳에서 1Km 정도를 작전도로를 따라 가다 우측의 희미한 산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 가파른 된비알의 오르막이 이어지다 능선에 올라서면 비교적 완만하게 도솔암까지 이어진다.

  

▲ 도솔암의 샘물...  물 맛이 좋다.

  

▲ 도솔암

  

▲ 도솔암

  

도솔암(兜率庵) : 영원사 인근의 삼정산 가장 높은곳의 도솔암은 사명대사의 사형인 청매조사가 수행하고 열반한 도량이다.  전화도 전기도 들이지 않은 암자 이다.

  

▲ 도솔암에서 영원사까지는 지루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 영원사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

  

▲ 영원사 아래의 주차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 영원사

  

영원사(靈源寺) : 창건년대는 알수 없으나 신라 때의 고승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하여  영원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설화에  영원조사는 원래 범어사(梵魚寺)에서 수행하다가 욕심많은 스승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토굴을 짓고 10년 동안 정진(精進)하여 대오(大悟)하였다.  그 뒤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서 흑구렁이로 변한 스승의 업신(業身)을 제도한 뒤 영혼을 인도하여 지리산 토굴로 돌아가다가 한 부부를 만났다.  그는 부부에게 열달 뒤 아이가 태어날 것이니 7년 뒤에 나에게 데려다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토굴로 돌아와서 7년 동안 절을 지어 영원사를 완성하였다.

  
찾아온 동자를 제자로 삼아 방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뒤 문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이 문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하라고 일러주었다. 그 뒤 동자는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오도(悟道)하여 전생의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영관(靈觀)을 비롯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가 12년을 수도하였고,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상언(常彦), 포광(包光) 등 당대의 고승 109명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조실안록 祖室案錄≫에 기록되어 있다.

  

▲ 영원사

  

▲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름길 끝에 잠시 동안의 휴식...

  

▲ 삼정산이 가까워지자 조망도 좋아진다.

   

▲ 삼정산 갈림목...  삼정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왼쪽의 오름길을 따라 200미터를 갔다 되돌아 와야 한다.

  

▲ 삼정산으로 가는 길목의 전망대...  멀리 반야봉이 조망된다.

  

▲ 삼정산 직전의 헬기장

    

▲ 삼정산 정상에서...

  

▲ 상무주암

  

▲ 상무주암

  

상무주암 : ‘무주(無住)’라 함은 불가에서‘일체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 반야삼매의 경지’를 뜻한다.  절집의 현판‘상무주(上無住)’의 글씨는‘원광’이란 뚜렷한 낙관은 경봉스님의 글씨다.  암자 마당에 서면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외지리(外智異) 최고의 전망지이다.  지리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봉에서 중봉, 천왕봉, 촛대봉,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 거침이 없다.
 
상무주암은 내력도 만만찮다.  고려때 타락한 현세를 벗어나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정혜결사운동을 펼쳤던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고, 깨침을 얻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전남 순천 송광사에 세워진 지눌의 보조국사비에는 상무주암 기록있다.  “지눌이 옷 세 벌과 바리대 하나만 갖고 지리산을 찾아 상무주암에 은거했으니 경치가 그윽하여 천하 제일이며 선객이 거주할 만한 곳이었다.”
 
상무주암에는 이후에도 조계종 10대 종정 혜암스님과 곡성 태안사의 청화스님,‘가지산 호랑이’로 불렸다는 비구니 인홍스님 등이 수행을 위해 머물고 있다.
 
     

▲ 문수암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보이는 지리산 반야봉

  

▲ 문수암

  

문수암(文殊庵) : 상무주에서 내리막 숲길을 걷다보면 문득 바위에 바짝 붙여지은 법당과 그 앞의 요사체가 나타난다.  문수암이다.  천인굴에서는 늘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흘러 나오는데 얼마나 시원한지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이다.

  
문수암 편액은 경봉스님이 쓰신 편액이다.  해발 1100m 문수암은 북향이라 여름에는 아주 시원하며 앞이 확 트여 맑은 날은 합천 가야산도 보인다.  마천에 있는 금대암이 자리잡고 있는 금대산이 눈 아래로 보인다.
 
  

▲ 문수암의 석간수  

  

▲ 삼불사

  

▲ 삼불사

  

삼불사 : 문수암 아래 삼불사는 조선시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이다.  삼불사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찰이라기보다는 암자라 해야 더 어울리는 곳이다.  지리산 바람과 물소리가 가득하다.  삼불은 과가불 노사나불, 현세불 석가모니불, 미래불 미륵불이다.

  

▲ 약수암으로 가는 길목에...  편안한 길이지만 멀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 약수암

  

▲ 약수암

  

▲ 약수암

  

약수암(藥水庵) : 실상사의 산내암자이다 실상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1㎞ 떨어진 삼정산 중턱에 있다.  경내는 항상 맑은 약수 두줄기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 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한다.  이 곳에는 약수암 보광전의 목조 탱화 보물이 있다.

  

▲ 실상사로 가는 길목에...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산길로 가려면 이 곳에서 우측의 시그널을 보고 따라가면 된다.

  

▲ 실상사로 내려서는 길목에...

  

▲ 실상사로 가는 길목의 울창한 송림

  

▲ 실상사

  

▲ 실상사

  

실상사(實相寺) :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다른 사찰은 깊은 산 속에 있는 것과  달리 실상사는 지리산 자락 의 낮은 분지에 자리한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지어진 절이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대이지만 발전을 보지 못하다가, 도의국가(道義國師)와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수학하고 돌아온 홍척스님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최초 사찰로 개창하게 된 것이다.  홍척스님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ㆍ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이 종산(宗山)을 더욱 크게 번창시켰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스님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1690년(숙종 16)에 이르러 침허대사(枕虛大師)가 300여 명의 스님들과 함께 조정에 상소하여 절을 중창 하였다.

  

▲ 실상사

   

▲ 하산 후, 후미를 기다리며...


201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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